목소리가 하나의 악기가 될 때
전자음악과 힙합 사이, 달라지는 래퍼의 목소리
힙합과 전자음악의 거리는 꾸준히 가까워져 왔다. 전자음악의 리듬과 신스, 사운드 디자인이 힙합 프로덕션 안으로 들어왔고, 최근 한국힙합에서도 두 장르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섞는 음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하나 있다. 비트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래퍼의 목소리를 다루는 방식까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랩은 기본적으로 말을 전달한다. 가사와 라임, 플로우가 있고 목소리는 그것을 전달하는 중심에 있다. 하지만 어떤 곡에서는 목소리가 잘게 잘려 반복되고, 피치가 크게 변하거나 이펙트에 의해 형태가 흐려진다. 신스와 함께 겹치고, 좌우로 움직이며, 드럼 사이에 하나의 리듬처럼 배치되기도 한다. 목소리가 랩인 동시에 트랙을 구성하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물론 보컬 샘플링이나 오토튠, 각종 이펙트가 힙합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의 몇몇 작업에서는 이러한 처리가 곡의 일부를 꾸미는 데 그치지 않고 사운드 전체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목소리를 리듬으로
HYPNOSIS THERAPY의 음악에서 전자음악은 힙합 비트에 덧붙는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다. 프로듀서 Jflow의 전자음악적 프로덕션과 짱유의 랩은 처음부터 한 트랙 안에서 긴밀하게 맞물린다.〈BENZ〉는 그 관계를 명확하게 들려주는 곡이다. 짱유의 랩 주변으로 짧게 잘린 보컬 샘플이 반복해서 삽입되고, 각각의 조각은 문장보다는 리듬의 일부로 기능한다. 보컬이 드럼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며 트랙의 속도를 더욱 끌어올린다. Jibin이 등장한 뒤에는 이러한 성격이 한층 강조된다. 같은 단어와 구절을 반복하는 보컬은 점차 문장의 의미에서 멀어져 일종의 구호처럼 들린다. 반복이 거듭될수록 발음과 억양 자체가 전면에 남고, 목소리는 랩과 샘플의 경계를 오간다. 그 결과 〈BENZ〉의 에너지는 짱유의 랩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음, 잘게 쪼개진 보컬, 반복되는 Jibin의 목소리가 함께 리듬을 형성한다. 랩을 비트 위에 배치하는 것을 넘어 목소리 자체를 비트의 일부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LISTEN — HYPNOSIS THERAPY, 〈BENZ (Feat. Jibin of Y2K92)〉
보컬 샘플과 Jibin의 반복되는 파트를 중심으로 들어보자. 같은 목소리가 문장에서 리듬으로 바뀌는 과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목소리로 공간을 채우기
Effie의 〈MORE HYPER〉에서는 목소리가 리듬뿐 아니라 공간을 구성한다. kimj의 프로덕션은 신스와 베이스, 각종 전자음이 빈틈없이 겹쳐진 밀도 높은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다. Effie의 보컬 역시 그 위에 독립적으로 놓이지 않는다. 강한 오토튠이 적용된 메인 멜로디 뒤로 코러스가 겹치고, 신스가 같은 음역대를 오가며 보컬과 뒤섞인다. 특히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구간에 따라 Effie의 목소리와 베이스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여러 겹의 보컬과 신스가 좌우를 오간다. 각각의 소리를 분리해서 듣기보다 여러 레이어가 동시에 움직이는 하나의 사운드 덩어리로 인식하게 한다. Effie의 보컬 운용도 이 같은 프로덕션과 잘 맞는다. 랩과 멜로디를 빠르게 오가고, 높은 애드리브와 강한 오토튠을 사용하면서 목소리의 질감을 계속 변화시킨다. 메인 보컬과 코러스, 신스 사이의 음색 차이가 좁아지는 순간에는 사람의 목소리마저 전자음 중 하나처럼 들린다. 이런 선택은 〈MORE HYPER〉의 과잉된 에너지와 맞물린다. 제목의 ‘Hyper’는 랩의 태도뿐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패닝과 겹쳐진 보컬, 과밀하게 배치된 전자음 전체를 통해 구현된다.〈BENZ〉에서 목소리가 리듬을 강화한다면, 〈MORE HYPER〉에서는 목소리가 다른 악기와 함께 트랙의 공간을 채운다.
LISTEN — Effie, 〈MORE HYPER〉
헤드폰으로 들으면 효과가 더욱 분명하다. 목소리와 베이스의 좌우 움직임, 메인 보컬 뒤로 겹쳐지는 코러스와 신스에 집중해서 들어보자.
랩의 타격감을 증폭시키는 효과
〈HOWMUCH?〉는 앞선 두 곡과 성격이 다르다. 전자음악과 힙합의 직접적인 결합이라기보다, 힙합 트랙 안에서 전자적인 보컬 프로세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우에 가깝다. 곡의 중심에는 여전히 반타01의 랩이 있다. 대신 MPT는 목소리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짧게 잘라 반복하고, 순간적으로 피치를 낮추거나 떨리는 듯한 변조를 적용한다. 보컬 찹과 피치 시프트, 게이팅과 트레몰로 등의 효과가 랩 사이사이에 짧게 등장한다. 주목할 부분은 효과의 배치다. 보컬 프로세싱을 곡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고 특정 단어나 플로우, 구간의 변화를 강조하는 데 사용한다.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지며 한마디에 무게가 실리고, 잘게 끊긴 보컬은 기존 플로우에 추가적인 타격감을 만든다. 후반부에서 반타01이 목소리를 거칠게 밀어붙이는 순간에는 프로덕션 역시 함께 팽창한다. 랩의 강도가 높아지는 시점과 사운드의 변화가 맞물리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보컬과 비트가 동시에 폭발하는 듯한 효과를 만든다. 앨범 초반부에 배치된 곡으로서 이후의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LISTEN — 반타01 & MPT, 〈HOWMUCH?〉
보컬 찹과 피치 변화가 어떤 구간에 배치되는지를 들어보자. 효과가 적용되는 순간마다 랩의 타격감과 에너지가 달라진다.
래퍼를 하나의 소스로
김심야에게 목소리를 사운드의 일부로 취급하는 방식은 비교적 오래된 주제다. FRNK와 함께한 XXX에서도 프로듀서와 래퍼의 역할은 일반적인 ‘비트와 랩’의 관계와 달랐다. 김심야는 2019년 인터뷰에서 당시 자신의 역할을 “샘플에 가까웠다”고 표현했다. 랩 역시 프로듀서가 다시 편집하고 재배치할 수 있는 하나의 재료로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Dogma》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김심야는 이번 작업에서 목소리의 볼륨을 줄이고 벌스를 짧게 구성하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하나의 ‘소스’처럼 들리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래퍼를 지우고 싶었다’는 의도는 〈HDI HDI HDI HDI HDI HDI〉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곡을 주도하는 것은 빠르게 분절되는 풋워크 리듬이다. 김심야의 목소리는 그 위에서 긴 벌스로 중심을 차지하기보다 짧게 등장하고 사라진다. 반복되는 단어와 음절은 드럼 사이에 배치되어 또 하나의 리듬 요소처럼 작동한다. 이는 단순히 전자음악 비트 위에 랩을 얹은 것과 차이가 있다. 래퍼의 존재감을 의도적으로 조절함으로써 랩과 드럼, 샘플 사이의 위계를 흐린다. XXX에서 자신의 역할을 ‘샘플’이라고 표현했던 김심야가 《Dogma》에서는 목소리를 하나의 ‘소스’로 다룬다. 표현은 달라졌지만 방향은 이어져 있다. 랩을 곡의 중심에 고정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전체 사운드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위치시키는 것이다.
LISTEN — Kim Ximya, 〈HDI HDI HDI HDI HDI HDI〉
가사보다 목소리의 배치에 집중해서 들어보자. 짧게 등장하는 랩이 풋워크 리듬에 어떤 변화를 더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악기가 된 목소리가 남기는 것
네 곡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목소리가 단순히 가사를 전달하는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리고, 반복되고, 변조되고, 다른 소리와 섞이면서 트랙을 구성하는 하나의 재료가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목소리를 얼마나 낯설게 가공했느냐이기보다는, 그렇게 변형된 목소리가 어떤 질감과 리듬, 분위기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가에 있다.〈BENZ〉의 보컬은 속도와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MORE HYPER〉에서는 여러 레이어와 뒤섞이며 과밀한 공간감을 만든다. 〈HOWMUCH?〉의 보컬 프로세싱은 랩의 타격감과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HDI HDI HDI HDI HDI HDI〉에서는 목소리 자체가 리듬과 질감을 구성하는 하나의 소스로 기능한다. 가사와 플로우가 전달하던 것을 이제는 음색과 반복, 왜곡과 공간 배치도 함께 전달한다. 목소리의 악기화, 래퍼가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의 범위가 그만큼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Editor. jabeum